01.
이 책은 예전에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처음 몇 페이지만 뒤적거리다 반납한 기억이 있다.
그때는 글이 잘 읽히지 않아 '어려운 책'이라는 선입견이 생겼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번에도 처음 몇 페이지를 반복해서 읽어야 했던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뒷부분부터는 정말 재미있다"는 말에 끈기를 갖고 계속 읽었다.
그 결과,
이 책은 단순히 어려운 소설이 아닌, 읽는 사람에게 깊은 질문을 던지는 강렬한 작품임을 깨닫게 되었다.
02.
이 책은 ‘예술, 사랑, 열정, 여자, 타인의 시선, 체면, 상류의식, 양심, 헌신’ 등
인간의 삶에서 가장 근본적인 주제들을 포괄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들이 단순히 텍스트로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대화와 상황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로 인해 읽는 페이지마다 페이지 끝을 접어가며 감탄할 만한 구절들을 따로 표시하게 되었다.
모든 문장이 매력적이고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03.
우선 가장 인상 깊었던 캐릭터는 찰스 스트릭랜드다.
그의 ‘달’을 향한 질주는 경이로웠다 못해 괴기스러웠다.
그는 가족과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열망에만 몰두하며
타인의 시선과 소문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삶을 선택한다.
나는 과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니.
04.
그런 선택을 해야 할 ‘달’ 같은 무언가를 나 스스로 가지고 있는가를 고민해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인간적 약점을 숨기지 않는다.
스트릭랜드가 냉소적일 때조차 타인으로부터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는 모습을 통해 그 역시 나약하고 소심한 인간의 본성을 가진 존재임을 느꼈다.
이는 그가 남긴 대사에서도 드러난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이 문장은 단순히 생존의 문제를 넘어, 삶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발버둥치고 있지 않은가.
05.
다음으로 더크 스트로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누가 봐도 ‘바보같이 착한 사람’이다.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
내 동생이 그렇다.
물론 더크처럼 극단적인 희생을 하지는 않지만,
약자와 소외된 사람을 도우려 하고, 상대방의 사정을 지나치지 못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더크의 희생적인 성향이 그의 아내 블랑슈와의 관계에서 비극을 초래한 것처럼,
지나친 헌신은 때때로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안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단순히 머릿속 계산으로 억누르는 것이 반드시 좋은 선택은 아니다.
진정한 이타심은 머리와 가슴의 균형에서 나온다.
이 균형을 찾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지만, 결국 인간다움을 이루는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싶다.
06.
스트릭랜드와 더크는 완전히 대조적인 인물이지만,
둘 다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열정을 좇아 이기적으로 보일 정도로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할까, 아니면 누군가를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야 할까?
이 두 갈래의 길에서, 우리는 어느 쪽도 완전한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07.
이 책에는 단순히 스토리뿐만 아니라, 곳곳에 삶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 있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다음과 같다.
“천성이 얼마나 모순투성이인지를 몰랐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를 몰랐다.”
이 문장은 인간이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된 존재인지를 다시금 느끼게 한다.
인간의 삶은 선과 악, 고귀함과 비열함이 뒤섞인 모순 그 자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08.
이 책은 내 인생책 리스트에 단연 추가되었다.
예술과 인간, 그리고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오래도록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특히 찰스 스트릭랜드와 더크 스트로브의 대비되는 삶의 선택은 우리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만든다.
지인들에게도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을 만큼 강렬하고 잊히지 않을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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