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평범한 아침, 이발사 이반 야꼬블레비치의 식탁 위 빵 속에서 '코'가 발견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코의 주인은 8등관 꼬발료프 소령이다.
그런데 그의 코는 소령 자신보다 높은 5등관이라는 직급으로 나타나며,
오히려 꼬발료프를 무시한다.
소령은 자신의 코를 찾아 헤매지만,
코는 당당히 "나는 당신과 어떠한 관계도 없으며, 독립된 인격체"라고 선언한다.
이를 통해 고골은 관료 사회와 계급 의식, 그리고 주객이 전도된 세상을 비판한다.
읽는 내내 ‘어떻게 이런 기발한 설정을 생각했을까’라는 의문과 감탄이 교차했다.
코가 단순한 신체 일부를 넘어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며,
인간이 자아와 외모를 동일시하는 태도를 날카롭게 풍자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특히 코를 얼굴의 중심부로 설정한 것은 탁월하다.
코는 외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숨을 쉬게 하는 필수적인 기관이다.
또한, 관상학적으로는 재물을 판단하는 부위로도 여겨진다.
소설을 읽으며
'만약 내게서 자신감이나 정체성을 이루는 무언가가 사라진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됐다.
우리는 일상에서 작은 여드름에도 신경을 쓰며 외적인 요소에 의존한다.
그런 점에서 ‘코’의 상실은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닌,
인간 존재의 불안을 건드리는 강렬한 비유다.
「외투」
「외투」는 한마디로 인간이 품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욕망과 약점을 담은 이야기다.
관청에서 일하며 따돌림을 당하는 아끼끼 아끼끼예비치는 낡은 외투를 대신할 새 외투를 갖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절제와 금욕 끝에 새로운 외투를 마련한 그는 외투와 함께 용기와 자신감까지 얻는다.
그러나 외투를 도둑맞고 나서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상실감에 빠지고, 결국 병을 앓다 죽고 만다.
심지어 죽어서도 유령이 되어 자신의 외투를 찾아 헤맨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물질적인 소유에 대한 집착을 넘어,
인간이 자신을 규정짓는 외적 요인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보여준다.
친구가 어릴 적 작은 체구로 괴롭힘을 당하다, 어느 날 반항하면서 문제를 해결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자신을 작고 무력하게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은 우리를 정의하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감을 찾기 위해 반드시 외적인 요소에 기대야만 하는 현실은 여전히 씁쓸하다.
아끼끼의 외투는 단순한 옷을 넘어 정체성과 자존감의 상징이었다.
그렇기에 외투를 잃었을 때 그는 단순히 물건을 잃은 것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까지 흔들리게 된다.
나 자신에게도 이런 상징적인 ‘외투’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정체성일까,
아니면 내가 붙들고 있는 또 다른 가치일까?
「광인의 일기」
「광인의 일기」는 사랑과 집착, 그리고 점차 무너져가는 정신 세계를 그린 작품이다.
국장의 딸을 짝사랑하는 뽀쁘리 시친은 국장의 개가 주고받는 편지를 훔쳐보면서 점점 미쳐간다.
자신이 스페인의 왕이라고 확신하며 감옥에 갇힌 후에도 그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작품에서 고골은 개인의 내면을 파고들며, 인간이 가진 망상과 불안, 그리고 현실 도피의 욕망을 조명한다.
뽀쁘리의 행동은 광기 그 자체로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내면의 혼란을 드러낸다.
우리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순간마다 저마다의 망상과 위안을 만들어내지 않는가.
"스페인의 왕이 살아 있었다. 그가 발견되었다. 그 왕은 바로 나다."라는
뽀쁘리의 외침은 스스로를 새로운 위치에 올려놓으려는 인간의 본능을 상징한다.
그는 현실을 견딜 수 없었기에 상상의 왕국을 세웠다.
그러나 그 끝은 고독하고 공허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물음과,
자신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심오한 고민을 던진다.
결론
고골의 세 작품은 우스꽝스럽고 비현실적인 상황을 통해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통렬히 비판한다.
「코」에서의 관료적 계급 의식,
「외투」에서의 물질과 정체성,
「광인의 일기」에서의 망상과 현실 도피는 지금도 우리의 삶과 깊이 맞닿아 있다.
이 세 작품을 읽고 나면, 내가 가진 '코', '외투', 그리고 '망상'은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고골의 풍자와 상징은 읽는 이를 웃음 짓게 하면서도 깊은 성찰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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