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임성순)
문체가 편안했다.
그래서 작가프로필로 다시 돌아가 봤더니, 76년생에 그동안 장편소설을 꽤 많이 써냈던 작가였다.
그 때문이었는지 유명한 작가의 글을 읽는 느낌처럼 편안하게 읽혔다.
우선 제목만으로는 어떤 내용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의 공포 퍼포먼스의 관람객이 되고 나서야 제목의 의미를 알았고,
책을 덮고 나서야 나도 양떼 무리의 한 마리 양에 불과하다는 걸 느꼈다.
퍼포먼스를 관람하며 전진하는 주인공의 뒤를 따라가는 내내 4D를 체험하는 것처럼 무서웠다.
생사의 기로에서 그를 살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호랑이 굴에서 정신을 차렸던 담력과 정신력이었을까, 돈이었을까?
둘 중 뭐가 됐든 나도 나중에 식은땀 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이 두 가지 카드를 써먹어봐야겠다.
그들의 이해관계(임현)
“내가 되지 못한 무수한 또 다른 나를 떠올리다보면
그들도 어딘가에서 지금의 나를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나로부터 한참 떨어진 뒤에도 내가 되지못한 것을 두고 후회하고
그것으로 소설도 쓰고 그러는 걸까.
진짜 그렇다면 거기도 뭐, 별거 없네. 그 별것 아닌 것으로 나를 너무 낭비했다.
그럼에도 만약, 내가 나를 미리 알고 다른 가능성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그때도 나는 여전히 내가 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지금의 나에게 조금 미안해진다.”
작가노트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왔다.
나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이휘재는 두 번의 선택이 가능했지만 우린 그 순간에는 하나의 선택 밖에 하지 못한다.
그때 미처 하지 못한 선택을 다시 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시간, 돈, 환경, 관계 등이 변해 버렸기에 결코 같은 선택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는 대상이 사라져버렸다면 더욱이.
인간은 누구나 후회를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미래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래에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죽는다는 사실뿐’이라는 드라마 대사처럼
적어도 우리는 모두가 죽는 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다만 그게 또 언제일지는 모르기에 미래의 죽음을 알고 있음에도 또 후회를 할 수 밖에 없다.
금세 잊어버리겠지만 난 또 다시 다짐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많이 더 자주 표현하고 사랑하기로.
더 인간적인 말(정영수)
‘누구든 자신의 생명의 끝을 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김할머니 사건>때 고민을 하다가 포기했고,
‘돈(병원비)이 없는데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으며 기다리는게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보라매병원 사건>과 <사랑의 리퀘스트> 등을 통해 고민했다.
역시 답을 내리지 못했다.
만약, 우리 엄마가 스위스행을 결정했다면 나는 어땠을까?
엄마의 행복과 선택을 존중하여 고개 숙여 인사 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엄마 손과 내 손에 수갑을 채웠을 것 같다.
행복이고 존엄이고 간에 그런 미사여구는 집어치우라고 소리쳤을 것이다.
가족을 만든 순간부터는 더 이상 혼자만의 삶은 아닌게 되는 것 같다.
한편, 내가 늙어 더 이상 이 생에 미련이 없으며 행복한 기억이 남아있을 때
죽음을 선택한다고 했을 때 누군가 방해 한다면?..
이렇게 양자의 입장이 되어보니,
결국 그 주인공(선택권자)이 있는 상황, 환경, 가치,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죽음인 것 같다.
작가가 여러번 글을 고쳐썼다고 하는데 남편이나 자식이 없는 설정을 의도한 것인지도 궁금해졌다.
만약 가족이 있었다면 작가도 결론을 맺지 못하고 오픈결말로 마무리 하지 않았을까?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박상영)
파스타라고 해서 요리 관련 내용인줄 알았더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소재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성소수자.
그동안 동성애를 다룬 작품은 책보다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접했다.
찾아서 본건 아니고 보다보니 동성애자 캐릭터가 등장했다.
난 그동안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이 없고 그들을 이해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대학교 수업때 동성애 관련 주제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난 그때도 어김없이 동성애자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맞은편에 앉은 학생이 동성애자는 아이를 가질 수 없으니 입양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때,
나의 가식과 거짓이 들통났다.
정확히 말하면 내 스스로도 놀랐다.
이유인즉슨 난 그건 아이를 위해서 안 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이성애자와 동등하게 바라봤다면
책의 표현을 빌려
보편적인 사랑을 하는,
길을 가다 그들을 마주쳐도 다시 돌아보지 않는 그런 흔한 연인이라고 생각했다면
‘아이를 위해서 입양은 신중해야한다.’라는 말은 절대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즉,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가족으로 완성될 수 없다는 말은
동성애자는 다름을 넘어 틀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반증이었던 것이다.
그 수업에서 나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은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오히려 동네오빠 둘의 군대이야기, 인생사, 개인적인 감정들을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 섣부르게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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